주말에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룰루랄라 광교산으로 간다. 가끔 청계산이나 검단산, 관악산도 사정권이지만 일단 주차가 편리한 경기대 수원캠퍼스 정문 쪽의 광교공원에서 형제봉으로 오르는 코스를 가장 선호한다. 이제껏 250번 이상 오른 것 같다. 집에서 차로 30분 이내 도착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공영주차장 자리가 많아서 웬만하면 대기 없이 바로 주차 가능. 심지어 3시간 이내 1,000원, 6시간 이내 2,000원, 그 이상은 3,000원으로 주차 요금도 부담이 없고 요즘처럼 무더위에 산행을 마치고 푹푹 절은 상태로 대중교통 이용은 민폐가 분명하다.
1. 형제봉 코스
광교공원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반딧불이 화장실 옆의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하면 3개 정도의 낮은 언덕을 넘고 나서, 마지막 480개 정도의 계단 코스를 오르면 드디어 해발 448m의 형제봉에 이른다. 코스 내내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트레킹 묘미는 약간 떨어지지만 무릎 관절에도 무리가 작고 어른, 아이 모두가 안전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어 좋다. 광교 저수지에서 형제봉까지 편도 3.7km, 개인차에 따라 1시간에서 2시간 사이 편도 일정을 잡으면 적당하다. 형제봉에서 1km 정도만 더 가면 비로봉(종루봉), 거기서 또다시 1.5km 정도 더 가면 광교산의 주봉인 시루봉이 있다.

2. 형제봉 명물
몇 년 전까지는 형제봉의 커다란 바위에 밧줄이 달려서 밧줄을 잡고 바위 위로 올라야 형제봉 정상석에 오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옆에 생긴 짧은 계단을 오르면 안전하게 인증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정상에서의 전망을 즐기기도 가능하다. 아주 최근부터는 꼭대기에서 과자부스러기를 손바닥에 펼치면 참새는 아닌데 비슷한 크기의 작은 새 몇 마리가 날아와서 부스러기를 먹고 가곤 하는 장면도 가끔 볼 수 있다. 아마도 인천항에서 장봉도 뱃길에 새우깡 먹는 갈매기 그림이랑 아주 흡사하다.
3. 형제봉 생태계
형제봉 바위 바로 아래에는 벤치가 6 ~ 7개 정도가 있고 적당한 그늘이 있어서 정상을 찍고 대부분 그 아래 벤치에 앉아서 간식을 먹거나 함 숨도 돌리고 그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주변에 산비둘기들이 어슬렁 거리며 음식 부스러기 청소를 하는데, 사람들은 완전 개무시를 한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길 고양이들이 생기더니, 산비둘기는 간데없고 길 고양이 가족들만 매번 늘어나고 나무 계단 아래에 누군가가 고양이 밥상까지 차려 놓아서 고양이 떼만 빈둥빈둥,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해부터인가 들개 무리가 한 두 마리에서 대 여섯 마리 이상으로 늘어나더니, 산비둘기도 길고양이들도 간데없이 사라지고 들개 떼가 제법 덩치가 커지고, 아직 포악하지는 않지만 제법 큰 놈들이 어슬렁거리니 살짝 겁도 나고 몇 년째 애용하던 벤치를 이래 저래 지나치게 되었다. 민원을 넣어야 할지 신경도 쓰이고 그럭저럭 몇 달을 형제봉 왕래를 안 하게 되었다.
4. 형제봉 유기견
날도 더워지니 캠핑도 뜸하게 되고 한양 도성길이나 서울 나들이는 햇볕이 지레 겁나고..... 할 수 없이 만만한 형제봉을 다시 찾게 되었다. 대부분이 나무 그늘이라 한 여름에도 광교산 입구만 들어서면, 에어컨 바람에 머리가 띵한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아 부담 없이 형제봉을 찾는다.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 형제봉 인증샷을 습관처럼 남기고 하산을 하는데 들개 떼들은 흔적도 없는 것이 그사이 누가 민원 신고를 한 듯하다. 짠한 생각이지만, 그래도 행여나 사람이 다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 애써 찜찜한 상상들을 지운다. 여전히 강아지를 동반한 산행객들이 거진 태반인데, 모두가 100% 함께 하산하기를 열심히 응원한다.

5. 형제봉 까마귀 떼
유달리 오늘따라 까마귀 떼가 난리를 친다. 수십 마리가 벤치 주변 나무에 모여서 까악 까악 고성을 질러댄다. 왜들 그러지? 벤치 옆을 지나는데 까마귀 두 마리가 푸다닥 푸다닥 영락없는 부부싸움이다! 무심결에 지나치려는데 한 마리의 다리가 야자 매트 끄나풀에 걸려서 몸부림치며 소리를 지르고, 나머지 한 마리가 줄은 쪼고 있다가 우리 부부를 보고 급히 줄행랑을 친다. 줄에 묶였네! 배낭에서 등산 칼을 꺼내서 줄을 자르려고 다가가는데, 묶인 까마귀가 온통 시꺼먼 부리 사이로 시뻘겋고 뾰족한 혀만 더 선명하게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커다란 날개를 퍼덕거리니 다가가던 나도 주춤할 수밖에. 더구나 주변에 모여든 까마귀 떼들 수십 마리가 점 점 낮은 가지로 내려앉으며 합심하여 까악 까악, 머리끝이 쭈뼛해진다. 아내가 이내 말리며, 혼자서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역시나 주변에 놀라 멈춰 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다. 어느새 까마귀 떼는 수 십여 마리가 더 늘고 바로 머리 위에까지 내려앉아 자칫하면 모두가 달려들 차비를 하고 있었다. 건장한 시니어 한 분이 같이 나서며, 놀란 까마귀가 마지막 발악을 하다가 천만다행 끄나풀이 풀리고, 자력 탈출 성공! 주변 사람들도 환호성 까마귀 떼의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도 형제봉이 떠내려갈 듯 쏟아지고, 순간 사람과 까마귀의 소리가 하나가 되었다.
설악산 중청 대피소에 가면 다람쥐 떼가 장난을 걸어온다. 발 밑까지 왔다가 발로 건들려고 하면 달아나는 듯하다가 바로 돌아서서 시비를 걸고 또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툭툭 건드리고. 직원이 한 마디 해준다, 얼마 전에 장난치며 왔다 갔다 하던 다람쥐 한 마리가 용감하게 버티다가 그만 발에 깔린 적이 있다고..... 요즘에는 형제봉에도 가끔 청설모가 왔다 갔다 하고 또 이름 모를 여러 종류 새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제 우리 주변으로 다양한 동, 식물들이 점 점 더 가까이에 다가오는 것이 너무나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잘 지키고 보호해서 사람들에게도 이로운 자연과 가까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더욱 넓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