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서울 근교에서의 몇 시간 정도 가벼운 산책 코스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수원 화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전 글에서 포스팅하였던 한양도성 둘레길은 전체 길이가 18.6km 이므로 웬만해서는 당일 완주가 어려운 편이지만, 수원 화성은 전체 길이가 5,74km이고 면적은 1.3 km2 이므로 2 ~ 3 시간 여유 있게 200년 역사의 옛 성곽 길의 운치를 느끼며 가벼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1. 수원 화성
수원 화성은 조선왕조 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2년 반의 공사 기간을 거쳐 1796년 9월에 완공한 성곽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중에 성곽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1979년에 복구, 복원하여 200여 년 이전 처음 축성하였던 원형의 형태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다른 현존하는 성곽들이 대부분 군사적 목적에서 만들어졌던 배경인 반면 수원 화성은 정치, 경제적 목적도 고려하여 만들어진 특징이 있다. 건축 기법에서도 성벽의 바깥쪽만 쌓아 올리고 안쪽은 자연지세를 활용하여 흙을 돋우고 메꾸는 건축 기법으로 최대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성곽을 만들었다.
화성은 당시 동서양의 축성술을 집약하여, 벽돌과 석재를 혼용하고 거중기 발명을 통한 목재와 벽돌의 조화를 이루는 건축방법 등으로 동양 성곽 축성술의 결정체로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건축 계획, 제도, 동원 인력 및 활용 계획, 건축 재료의 출처와 용도, 건축 예산, 시공 기계, 임금 계산, 공사 일지 등의 기록들을 온전하게 남겨두어 역사적 가치도 매우 높은 편이다.

2. 화성 행궁
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을 일컫는 행궁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곳으로 평가받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수원 화성 행궁이다. 정조가 부왕인 사도세자를(나중에 장헌세자로 칭호를 바꿈) 모신 화산릉을 참배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화성의 부속 건물이었던 행궁에서 쉬어 가곤 하였다. 수원 팔달산 동쪽 기슭에 576칸의 규모로 건립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거처를 포함하여 궁중 연회장, 궁녀와 병사들의 숙소 등 행정 업무와 군사령부 기능까지 모두 가능한 축소판 왕궁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화성 행궁의 주 건물인 봉수당이 일제 강점기에 의료기관으로 사용되면서 훼손되었다가 2003년 482칸을 복원하였다. 지난주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에도 행궁의 나머지 건물들의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완공 후의 전체 모습이 매우 기대가 된다.

화성 행궁의 내부는 말그대로 축소판 왕궁이라 자칫 경복궁의 한 모퉁이를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작고 아기자기한 규모라서 부담 없이 한가롭게 1시간 남짓 거닐다 보면 어느새 고궁 정취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특히, 5월부터 10월 까지는 야간 개장을 하고 저녁 9시 30분까지 관람이 가능하니 한낮의 더위가 걷히고 나면 고즈넉한 고궁에서 한밤의 정취를 감상하는 여유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행궁 뒤쪽 담장 너머 언덕 위에 있는 "미로한정"이라는자그마한 정자에 앉아 행궁의 전체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색다름이 너무 좋았다.

우리가 방문한 지난 주에는 오후 5시 정도에 입장을 하였는데 날이 너무나 화창하고 해가 길어서 해질 무렵까지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하여 바로 옆의 행리단길 맛집을 찾아서 고 고... 아직 개발이 덜 되어 오히려 소박한 거리 모습이 더욱 정겨운 골목들이었고, 제법 감성 돋는 카페나 맛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선택한 제주도식 메뉴는 맛과 가격 모두 대만족이었다. 그리고 당일에는 행궁 재입장은 가능하지만 저녁을 마치고 나서도 날이 너무 환해서, 야간 관람(달빛화담)은 다음으로 기약하였다.

수원 화성에는 팔달문, 화서문, 장안문, 서북공심돈, 방화수류정 등 많은 국보급 보물들이 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200여 년 전의 성곽과 고궁임에도 보존 상태도 양호하고 건축 기법도 한양 도성들과 차이가 있어 색다른 맛이 있다. 옥의 티라면, 화성 둘레길에는 그늘이 거의 없는 편이라 해가 저물고 나서 아니면 흐린 날, 어쩌면 차라리 가랑비가 내리는 날 가볍게 산책을 한다면 제법 독특한 체험이 될 것 같다. 거기다가 화성 행궁은 야간 관람하기에 적당한 넓이에다가 궁궐 배치와 조경까지 잘 갖추어져 있어 꼭 다시 야간 관람을 하여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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