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처음으로 한양도성 둘레길을 알게 되고 전체 6구간 중에서 가장 난도가 높다고 하는 창의문에서 숙정문을 지나 혜화문까지 이르는 백악구간 트레킹을 가장 먼저 끝내 두었고 나머지 구간은 짬짬이 둘러보고 둘레길을 완주를 하자는 생각으로 이래저래 미루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한 여름이 되기 전에 둘레길 완주를 마치고 가을과 겨울 사이에 다시 두 번째 완주를 하자는 요량으로 아내가 먼저 한양도성 둘레길을 가자고 재촉을 한다.

1. 낙산구간
혜화문 -> 카톨릭대학 뒷길 -> 낙산공원 -> 동대문 성곽공원 ->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1시간 남짓한 낙산 구간은 난도가 가장 낮은 산책 코스로 알려졌다. 아무튼 우리는 한성대입구로 와서 지난번 백악구간 종료 지점이었던 혜화문까지 200m 정도를 걸어가서 정식으로 2차 구간을 시작하였다. 혜화동에 이렇게 멋진 성벽길이 있다는 것이 사뭇 믿기지 않아서 연신 두리번두리번하며 살짝 언덕길을 오르는데 오전 10시 30분 정도임에도 벌써 더위가 느껴진다.

언덕을 넘어 낙산 공원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종로, 을지로, 남산까지 서울 구도심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멀리 북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남산까지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이렇게 지난 600년 동안 한양을 품고 있는 도성 성곽길을 우리가 지금 걷고 있다는 것이 더욱 신기하기도 하다.

이제 흥인지문까지 500m 남짓하려나 언덕 아래쪽으로 층층이 줄지어진 카페들이 옛집들을 리모델링하여 나름의 특색으로 모여 있는 것이, 해지고 어두운 저녁에 서울 야경을 보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면 어디 웬만한 해외여행 부럽지 않은 소확행이 될 것 같다. 바로 아래 흥인지문이 보인다.
2. 흥인지문 구간
흥인지문을 지나서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 광희문 -> 장충 체육관 뒷길까지가 흥인지문 구간이다. 한양도성 둘레길 완주 기념 배지를 받으려면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서대문)에서 4군데 스탬프를 둘레길 지도에 찍어야 하는데, 흥인지문 옆에 있는 안내소를 지나쳐서 스탬프를 찍느라 왔다 갔다, 허기가 밀려온다. 다행히 근처에 써브웨이가 있어 완전 대만족! 이런 날에는 고민 없이 샌드위치에 탄산이지. 써브웨이에서 잠시 정신줄을 놓아서 인지 광희문 방향을 잘못 잡아서 또다시 헛걸음하였다. 이 구간이 그냥 도심지를 걷는 것이라 가장 재미가 없는 것 같다. 더구나 광희문부터 장충 체육관 뒷길은 그냥 골목길이라 심심하기까지 하다. 그나마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거리라서 다행이고.

3. 남산(목멱산) 구간
장충체육관 뒷길 -> 반얀트리호텔 -> 국립극장 -> 나무계단길 -> N 타워 -> 봉수대 ->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 -> 백범광장 -> 숭례문으로 짧지 않은 거리이고 계속 오르는 코스라서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다. 물론 남산 구간만 계획한다면 누구나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장충체육관 뒤에서 반얀트리 호텔까지의 구간도 어린 시절 추억 돋는 길이다. 초등학교 무렵일까 아무튼 어릴 쩍 기분들이 새삼스럽게 밀려온다.

호텔 주차장을 끼고 국립극장 쪽으로 신호등을 건너 다시 남산으로 오르는데, 해는 중천이고 무더위가 한창이라 나무 계단길을 오르기 전에 한편에 서서 푸른 하늘을 보며 한숨을 돌린다.

나무 계단길을 힘겹게 오르니 N 타워가 눈에 들어오고 봉수대 옆에 잠시 자리를 잡았는데 소나기가 내릴 것 같다. 서둘러 N 타워 식당가로 들어가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진다. 식사는 남산 돈가스로 이미 정했기 때문에 소나기만 피하자고 오락실에서 테트리스를 서너 판 하는데 거진 수십 년만인 것 같다. 이내 소나기가 걷히고 더위도 가라앉고, 한양도성 성곽의 600백 년 돌담을 고스란히 전시하는 유적지까지 둘러보면서 돈가스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숭례문에서 세 번째 스탬프를 찍었으니 오늘 목표는 달성하였고, 다음에 숭례문에서 출발, 돈의문에서 마지막 스탬프만 찍고 인왕산을 올라서 창의문으로 하산하면 대망의 한양도성 둘레길 완주가 마무리된다. 그런데 둘레길 완주보다는 한양도성 둘레길의 발견이 더 값진 의미가 있고, 어쩌다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둘레길만 걸어도 나의 서울, 나의 어린 시절들의 향수를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설렌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나의 고향을 찾을 수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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