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12월, 각종 송년회와 연말 모임이 빽빽한 일정 중에 문뜩 아내와 둘이서 "우리 송년회는 어떻게 하지?"라는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그 무렵 둘째 아이 입시 문제로 아내의 스트레스도 최고 수준. 한겨울 한라산 등반은 어떨까? 백록담은 어때! 12월 말 주중이니 비행기는 KAL 마일리지로 하고, 당시에 이천과 제주도에 골프장과 호텔이 있는 컨트리클럽 기명 회원이니 호텔도 어려움 없이 바로 예약이 되었다.
1. 제주도로 go go!
밀리언 마일러의 혜택 중의 하나가 공항 도착 waiting 이면 거의 대부분 사전 예약 없이도 비행기 탑승이 가능하고, 일 년 내내 성수기에도 비성수기 기준 마일리지 공제라 제주도 왕복이 1만 마일 공제하면 끝. 참 쉽다. 연말이라 미국 Buyer 들도 12/20부터 대부분 휴가를 떠나서 업무도 여유가 있고 남은 연차도 소진할 겸 2박 3일 제주도로 날아갔다.
2. 주상절리와 중문 갈치조림
사실 우리의 제주도 여행 목적이 한라산 등반이고, 백록담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둘째 날 아침 새벽 6시 이전에 호텔에서 출발하여야만 한다. 그래서 첫날은 주상절리만 보고 이른 저녁은 중문에 있는 소문난 갈치조림으로 일정을 잡았다.
중문. 대포 해안의 주상절리는 폭이 1km, 높이는 30m ~ 40m로 현무암 재질의 용암이 흘러나와 만든 돌기둥이 병풍 모양으로 펼쳐져서 만들어낸 장관으로 국내 최대 규모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라 사진만 몇 장 후다닥 남기고 갈치조림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매스컴에서 자주 보아서인지 처음 간 식당이지만 낯설지도 않고, 둘이 먹기에는 가격도 제법 비쌌지만 메인 요리를 먹기 시작하고 나서 이내 고개를 끄덕끄덕, 제값 하는 것임에 이의가 없었다.
3. 블랙스톤 컨트리클럽
경기도 이천에도 CC가 있고 양평 힐 하우스도 동일 멤버십으로 사용이 가능했다. 힐 하우스의 널따란 정원 조경이 워낙 유명해서 주말에 가끔 가봤었지만 제주도는 그때가 처음 방문이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호텔 직원이 골프 카트로 호텔까지 날라주는 시스템으로, 주차를 마치니 직원이 와서 짐을 옮겨 실으면서 캐디백은 어디 있나 물어본다. 씩 웃으며 골프 치러 온 것이 아니라 다음날 한라산 등반 계획이라고 설명하니 밤새 눈이 많이 온다며 지레 겁을 주었다.
4. 성판악 탐방안내소로 출발
밤새 눈도 제법 내리고 한 겨울이라 아침 6시도 안 돼서 호텔에서 출발하였다. 대충 50km 거리에 아직 어둡기도 하고 중간중간 미끄러운 노면이라 거진 1시간 30분 만에 성판악 탐방안내소 주차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만석이라 조금 아래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매점에서 아침도 먹고 간식으로 김밥과 컵라면까지 모두 완전 무장 완료!
5. 진달래밭 대피소
장거리 산행은 아니지만 이미 겨울 산행 경험은 있어서 준비물은 확실히 챙겼다. 등산 스틱, 스패츠, 아이젠, 여분의 옷과 장갑, 방한모자, 뜨거운 물, 에너지 바, 비상약 등 등 항상 준비물은 확실히 챙기는 버릇이라 각각 40리터 백팩이 빵빵하게 채워졌다. 짐이 많아 번거롭고 다소 고생은 되지만 겨울 산행은 충분한 준비가 무조건 필수 조건이다.
중간중간 눈도 쌓이고 아이젠 착용으로 거북하기도 하였지만 벼르고 벼르던 한라산인데 사뭇 신바람도 나고 역시 한라산 도전은 성공이라고 서로 자찬을 하며 그닥 힘들지 않게 진달래밭 대피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간식을 먹으려고 자리를 잡고 보니 그 당시에는 매점이 있어서 컵라면이며 웬만한 간식거리가 모두 있었다. 괜히 무거운 짐을 한 짐 가득 매고 가느라 고생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라산 전체에 매점은 하나도 없으니 반드시 물과 간식은 사전에 준비하고 입산하여야 한다.
6. 드디어 백록담!
11월 ~ 2월까지는 동절기이며 성판악 코스는 진달래밭에서 12:00 이후에는 정상에 오를 수 없고, 정상인 백록담에서는 13:30 이전에 무조건 하산을 하여야 한다. 우리는 항상 여유 있게 움직이는 바른생활 국민이라 cut off 도 되기 전에 11시 30분쯤 넉넉하게 출발. 이제 정상까지는 2.3km 구간인데 제법 가파른 편이기도 하고 남은 구간은 대부분 눈길이라 줄곧 아이젠까지 신어서 속도는 더디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아무리 성판악 코스가 완만하다고는 하지만 백록담 높이가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947m이고 성판악이 해발고도 750m이니 해발고도 1,200m 가까이 올라야 하는 코스이므로 절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올랐다. 백록담! 남한의 최고봉! 그냥 오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아주 많이 좋았다.
그 해 겨울 우리 부부의 송년회는 그렇게 대성공이었다. 한국에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한라산 백록담은 최소한 한 번은 찍어야 하는데, 그것도 한겨울에 한라산 백록담에서의 눈꽃 트레킹을 마치고 나니, 아직까지도 인생 최고의 산행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부부 신년회는 또다시 도봉산 백운대에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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