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스트레스가 과하게 밀려올 때에는 가끔 하드 코어로 스트레스를 녹여 버리는 방법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어쨌든 업무로 인한 중압감이 유독 심하게 다가왔던 몇 해 전 여름 끝자락의 천왕봉 무박 2일 산행의 기억만으로도 웬만한 스트레스는 무던해지는 신박한 효능을 얻게 되었다.
동문 몇몇이 추진하는 천황봉 트랙킹에 흔쾌히 동참을 하게 되었다. 금요일 오후 6시 정시 퇴근, 차가 막히기 전에 일단 집으로 가서 전날 챙겨둔 배낭을 확인하고 서울남부터미널로 이동하여야 한다. 저녁 9시 정도 아내가 전철역까지 데려다주고 양재동 터미널에는 약속 시간 이전에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선배 형님이 준비한 햄버거까지 배낭에 챙기고 드디어 11시 30분 출발 시외버스에 탑승 완료. 원래는 중산리 정류장이 있지만 이미 만석으로 예약이 모두 끝나서 우리는 진주 시외버스터미널로 끊었고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중산리로 향했다.
어쨌든 시외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일행 모두에게 멜라토닌을 하나씩 나주어 주고 나도 한 알 챙겨 먹었다. 언제부터인가 미국 출장 첫째 날이면 새벽에 가끔 잠에서 깨는 습관이 생겨서 매번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멜라토닌을 먹다 보니 수면 조절이 필요할 때마다 톡톡히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날도 금요일 하루 종일 회사에서 업무에 쫓기다가 고작 3시간 반 남짓하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니 쪽잠이라도 깊이 잠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미리 챙겨 두었다. 집 떠날 때마다 항상 챙기는 이어 플러그와 안대도 완전무장, 중산리에 도착할 때까지 나름 완벽한 숙면 성공!
중산리 탐방 안내소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이 3시 입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엊저녁 햄버거로 다시 요기를 하고 등산화도 정비하고 랜턴도 챙기고 가벼운 몸풀기도 잠깐 이내 쪽문인지 철문인지 입산 시작과 동시에 문이 열리자마자 우르르 많은 무리들이 삼삼오오 깜깜한 새벽에 헤드랜턴으로 발 밑을 비추며 오르고 또 오르고, 연이은 경사가 만만치 않다. 밝은 대낮이라면 계속해서 이어지는 급경사에 지레 질려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끝이 없을 것 같은 가파른 비탈길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오전 6시 55분 중산리탐방소에서 출발한 지 거진 4시간 만에 천왕봉 정상 도착! 산행 중간중간 턱까지 차오르던 거친 호흡과 땀방울들이 이제껏 어깨를 짓누르던 스트레스들을 이슬처럼 날리고 있었고 정상에서의 차가운 바람은 내 안의 모든 것을 Resetting 하였다.
천왕봉 인증 샷을 마치고 시장끼가 몰려온다. 서둘러 장터목 대피소로 발길을 재촉하고, "하늘 아래 첫 집"! 해발 1,670M에 세워진 장터목 대피소는 한국의 건축물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이렇게도 불린다. 거기에서 우리는 뜨끈한 어묵탕과 라면을 곁들여 아침 식사를 성대하게 마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운해 속에서 만끽하였다.
이제 백무동 쪽으로 하산길을 잡고, 오를 때 어두어서 눈에 담지 못하였던 지리산의 장관을 하나하나 감상을 한다. 역시 하산길도 제법 가파르다. 오랫동안 아름다운 강산에서 트랙킹을 즐기기 위해서는 등산 스틱과 무릎 보호대를 꾸준하게 챙기는 준비성이 필요할 것 같다.
백무동에 도착해서 우선 시외버스를 예약하고 근처 식당의 간이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몸이 다시 가쁜해졌다. 거기에 파전과 군두부를 더한 막걸리 조합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제일 많은 복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곤하게 아주 잠깐 기절한 것 같은데 일행은 그새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였고, 대충 6시 전후가 되었다. 바로 헤어지기가 서운하니 근처 호프에서 간단히 치맥까지 마치고 나서 지하철을 잡아타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
거의 24시간 만에, 엊저녁 집을 나서서 경상도 진주까지 내려가서 거기서 중산리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3대 고봉 중의 하나인 지리산 천왕봉을 넘어서 백무동을 거쳐 동서울터미널 그리고 다시 집까지 만으로 딱 하루가 걸린 것이다. 물론 날씨도 도와주고 연결 교통도 잘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지리산을...... 아무튼 무박 2일 지리산 천왕봉 트랙킹은 내 인생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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