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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폭풍의 언덕 선자령 - 평창의 발견

2023년의 버킷 리스트 1번이었던 선자령 백패킹. 금년 초부터 준비를 하였고, 지난 주말 3일 연휴가 드디어 D-Day! 이미 지난주 중반부터의 일기 예보 상으로 토요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비가 오는 것으로 나와 있어서 우중 산행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요일부터 새로 나온 돌풍 예보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토요일 아침 대관령으로 달리면서 중간중간 예보를 확인하니 거센 바람이 태풍급으로 악화되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부딪혀 보고 결정하기로 아내와 의기 투합하고 대관령으로 출발~~~ 

 

1. 세 번째 선자령 

선자령은 벌써 세 번째. 몇 해 전에 이미 처남과 함께 그저 화창하기만 한 날에 아무 생각 없이 선자령 백패킹에 도전하고 너무나 평온하고 행복한 백패킹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감동을 이어받아 작년에는 친구들과 선자령 백패킹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옛 대관령휴게소에 도착하였지만,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일기 예보와 같이 한치도 틀림없이 하루 종일 주룩주룩 내렸다. 할 수 없이 백패킹은 단념을 하고 선자령 트레킹만 하고 돌아와야만 하였지만 트레킹만으로도 모두가 대만족! 우중 산행의 참맛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내도 줄곧 선자령 백패킹 앓이를 하여서 드디어 지난 주말 거침없이 도전!   

선자령 등산로

2. 선자령 트레킹 코스 

옛 대관령 휴게소 바로 옆에 양떼목장이 있고 휴게소 주차장에서 300m ~ 500m 정도 이동을 하면 두 군데의 선자령 코스 시작 지점이 나온다. 양떼목장 바로 옆을 따라 선자령을 올라가는 코스가 있고, 국사성황사와 KT 송신소를 지나서 선자령에 이르는 반대 방향 코스가 따로 있다. 두 개의 코스가 비슷하게 편도 5km 정도의 거리이므로 각각 들머리와 날머리로 잡고 10km를 일주하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다. 그런데 KT 송신소 코스는 출발부터 1.8km 구간이 아스팔트 포장도로라서 일주 코스를 계획한다면 차라리 KT 송신소 방향 출발과 양떼목장으로의 하산 코스가 발의 피로도 줄이고 경치를 즐기기에도 좋을 것 같다. 선자령 정상석에서 양떼목장으로 하산길의 뷰가 훨씬 좋고 둘레길처럼 아기자기해서 지루하지도 않게 선자령의 감동을 힐링으로 완성시키는 코스이다. 중간중간 냇물 소리는 보너스! 작년에는 친구들과 아스팔트 길을 아예 생략하고 양떼목장 코스로 올라가서 다시 원점회귀 하는 코스를 잡았었다. 이 또한 추천할만한 선택이다.

 

3. 드디어 선자령

아내와 나는 토요일 오전 12시 무렵에 옛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아침에 집에서 출발할 때에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영동고속도로 호법을 지나면서부터 빗줄기가 계속 우리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을 하였다. 어차피 오후 6시 정도면 비는 그치는 예보라서 비는 걱정이 없었다. 단지 바람 바람 바람... 대관령 휴게소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점심을 하면서 물어보니 돌풍 예보가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한창 날이 좋을 때에는 주말 그 시간이면 수많은 백패커들이 왔다 갔다가 할 터인데 그야말로 한 팀도 보이지가 않는다. 일기예보는 초속 20m ~ 30m의 강풍 예상이란다. 어떻게 잡은 날이고, 얼마나 기대가 컸었는데! 일단 아스팔트 길로 이어진 KT 송신소까지 차로 가서 현지 상황 파악을 하기로 하였다. 역시나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남자끼리라도 고민일 터인데 아내랑 둘이서 이 거센 바람, 자신이 없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솔내음캠프장 사이트

4. 대관령 솔내음 캠프장

옵션은 25km 정도 거리의 강릉으로 가서 벼르고 있던 테라로사에 가서 커피도 한잔하고 숙소를 찾아보기로 하였다가 이내 5/1까지 이어지는 3일 연휴라는 현실을 직감하니 숙소 잡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역시나 어플을 뒤져도 만만한 숙소가 없다. 옵션 2, 어차피 비도 오고 돌풍 예보도 심각하니 근처 캠핑장의 빈자리를 찾아보기로. 역시 현명한 선택. 솔내음 캠프장, 이름부터 정겹다. 다행히 자그마한 테크 사이트 하나가 비어 있다. 어차피 MSR 엘리서 하나만 치고, 비화식 메뉴뿐이지만 선자령 정상에서 먹기로 준비한 육회, 광어회, 빵, 컵라면, 바나나, 삶은 달걀, 사과, 맥주 1리터, 한라산 500ml 두 병, 이 정도면 먹거리, 잠자리, 마실거리 모두가 완벽하다. 선자령 정상에서의 멋있는 풍광만 빠졌을 뿐. 

산행 코스는 평이한 둘레길 수준

5. 선자령 트레킹

둘째 날은 이미 라마다호텔 평창 예약도 하고 결재까지 끝나서 숙소 걱정은 없지만, 차라리 위약금을 부담하고 둘째 날 선자령 백패킹을? 일단 다시 가서 확인하기로 하고, 전날과 같이 KT 송신소로 올라가 보니 그날도 바람이 엄청나다. 일단 백패킹 완전 포기, 간단한 간식과 커피만 준비하고 트레킹 모드로 전환하고 다시 출발. 사실 KT 송신소에서는 3.2km 거리 거의 둘레길 코스. 언젠가 다음에는 이 코스로 백패킹 도전하기로 하고 보니 훨씬 마음도 가볍고, 사실 전날 출발 전에 백팩 무게를 재고 보니, 나는 24.5kg 정도 아내는 12kg 정도 무게라 살짝 걱정이 있었는데, 이 코스로 잡으면 최악의 경우 두 번 왕복해서 짐을 나르면 그리 무리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아내 침낭을 가벼운 것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면 2kg 정도는 줄일 수 있고. 생수도 1통만 줄이면 거기서 또 마이너스 2kg. 

 

엄청난 바람소리

가벼운 배낭 하나로 출발하니 전체 1시간 코스인데 마지막 1km 정도를 남기니 바람을 피할 길이 전혀 없고, TV 에서나 보던 사람을 날릴 것 같은 바람이 실감 백배이다. 인적도 드물고 조금 전에 만난 건장한 친구들도 백팩을 포기하고 하산 중이라는 힘없는 대답이 이해가 되었다. 안전이 최고, 그냥 트레킹도 포기하고 돌아가자. 그런데 아내가 거의 울상이고 발 길을 돌린 지 잠시, 초등학생 포함 한가족 4명이 씩씩하게 올라온다. 정상까지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투철해 보인다. 그래 우리도 다시 도저언~~~

서있기도 어려운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바람에 사람이 날아간다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 줄 실감을 했다. 후회 반, 용기 반 나머지 거리를 바람과 사선으로 가면서 버티고 오르기를 반복하고 드디어 백 두 대 간 선 자 령! 감동 백배. 아쉽지만 트레킹으로 만족한다. 조만간 다시 날을 잡고 꼭 다시 와야겠다.

어제 고집부리지 않고 다른 옵션을 선택한 것에 스스로 감사하고, 텐트 피칭도 안되지만 어두운 한 밤에 텐트는 날라 갈 것이고 매트에 침낭도 공중 부양,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심지어 오늘도 백패킹은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하고, 아쉽지만 다음으로~~~ 하산길에 몇몇 팀이 완전무장으로 히말라야라도 오를 기세로 오르고 있었지만 차마 정상의 상황을 설명해 주기가 어려웠다. 그들도 직접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과정을 겪어야 성장하는 것이니....

평화의 종

비록 벼르던 선자령 백패킹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지만, 대신 더 값진 평창을 얻었다.

2018 평창 올림픽. 강원도에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둥근 산세의 깔끔한 신도시가 있는 줄은 지난 두 번의 방문 중에 정말 몰랐었다. 오로지 선자령에만 꽂혀서 한적하고 평화로운 평창의 정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바람만 빼면 푸르고 푸른 하늘과 뭉개 구름, 정말 얼마 만에 보는 눈 시린 하늘이야!  더구나 중간중간 올림픽 조형물들이 깨끗하면서 정겨운 도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평창 여행만을 위해서도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날 저녁 한우 채끝과 살치살 끝에 추가한 장국밥의 감탄할 만한 미각도 한동안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아마도 조만간 평창 장국밥 찍고, 강릉 여행으로의 일정을 잡을 것만도 같다.

이번에도 새삼 국내에도 보물찾기 같은 소중한 여행지들이 많아서 감사하고 또 행복하다.